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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품업체와의 상생은 기술과 신뢰 박영성 2007.07.12
자동차는 2만여 개의 부품으로 만들어진다. 많게는 3만 개의 부품으로 이뤄진다고도 한다. 빠른 속도로 도로 위를 쏜살같이 내달리는 자동차도 따지고 보면 수많은 부품들이 한 데 어우러져 만들어진 종합작품인 셈이다. 최첨단 자동차도 인수분해하듯 쪼개가다 보면 결국 조그만 볼트, 너트로부터 시작된다. 볼트 하나가 제대로 물려 있지 않으면 수천만 원짜리 차도 소비자 불만의 대상인 불량품이 되고 만다. 이런 점에서 제대로 된 부품없이 완성도 높은 차를 기대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좋은 차를 만드는 첫 걸음은 좋은 부품을 만드는 데에서 시작된다. 따라서 완성차업체라면 좋은 부품을 만들려는 협력업체들을 최대한 지원하고 밀어줘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부품 협력업체를 이끌어주는 게 결국은 스스로를 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완성차업체와 부품업체의 상생은 ‘하면 좋고 안해도 그만’인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할 과제’로 봐야 한다.

협력업체에 대한 기술지원은 양자 간 상생의 기초가 된다. 일부 대형 부품사들을 제외하고 완성체업체에 비해 자금과 규모 등 모든 면에서 열악한 부품사들은 R&D에 제대로 투자할 여력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이들 업체에게 모기업이 갖고 있는 높은 수준의 기술을 이전해 부품의 수준과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이런 점에서 국내의 한 완성차업체가 재단을 설립해 부품업체들에 대한 기술전도사 역할을 하도록 한 건 주목할 만하다. 수많은 협력업체를 거느린 모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 재단에서는 모기업의 지원을 받아 협력업체들에 대한 각 부문별 기술지원에 나서고 있다. 부품업체들이 처하는 다양한 기술적 문제들에 대해 조언하고 지도하면서 전체적인 품질 수준을 높이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다. 또 기술정보와 다양한 산업관련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원하는 부품업체들에 제공하는 소임도 충실히 하고 있어 좋은 표본이 되고 있다.

‘게스트 엔지니어링’ 제도도 완성차업체와 부품사의 윈윈전략에 좋은 모델이 된다. 신제품을 개발하는 전 과정에 협력업체들이 처음부터 함께 참여토록 하는 것이다. 이는 협력업체에 대한 기술지원이라기 보다는 신제품 개발기간을 줄여 전체적인 비용을 절감하고 발 빠르게 시장에 대응하고자 하는 목적이 더 크다. 그러나 그 과정을 겪다 보면 부품업체의 기술도 빠르게 좋아진다. 자신들이 만들 부품에만 신경쓰는 게 아니라 차가 개발되는 전 과정을 보면서 전체의 한 부분으로 참여하게 돼 훨씬 완성도가 높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게스트 엔지니어링은 개발기간 단축과 비용절감에 큰 효과가 있어 오래 전부터 많은 업체들이 도입하고 있으나 국내 업체들이 제대로 그 효과를 보고 있는 지는 의문이다. 완성차업체의 기술을 협력업체에 전수하기 위해서는 양자 간 신뢰관계 구축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죽으나 사나 함께 가야 할 동반자’라는 인식이 서로에게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신뢰없이 이뤄지는 협력은 형식적일 수밖에 없어 원하는 효과를 얻기 힘들다. 형식만 흉내내서는 원하는 품질이 나올 리 만무하다.

국내의 완성차업체와 부품업체는 상호 의존적인 만큼 큰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여전히 불균형한 관계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모기업이 관계를 주도하며 제품 개발과 관련해 이런저런 기준, 특히 가격을 맞출 걸 요구하면 부품업체들은 힘든 가운데에서도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 이런 관계가 총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게 완성된 제품이라고 보면 된다. 반면 부품업체들 중에는 오히려 완성차업체를 이끌며 주도적으로 관계를 형성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작지만 강한’ 존재들이 있는 것이다. 델파이, 보쉬, 지멘스, ZF, 한국의 만도와 현대모비스 등이 대표적이다. 부품업체라고 이들이 꼭 작은 건 아니다. 델파이같은 경우를 보면 완성차 조립만 빼고 모두 다 한다고 할 정도로 종합 부품회사로서의 면모를 갖췄다.

이들은 각 완성차업체들을 상대로 자사의 기술을 판다. 파는 건 단품 하나하나로 보여지는 작은 제품일 지 모르지만 결국 그들이 파는 건 기술이다. 독자적인 기술이 있어서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고, 완성차업체와 동등한 입장에 서서 자동차를 만드는 데 큰 힘을 보태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부품업체의 생존비결은 결국 ‘기술’인 셈이다. 완성차업체냐 부품업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가 기술을 가졌는 지가 키 포인트다. 보쉬의 디젤엔진 기술은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아이템이다. 만도의 ABS와 자동차 자세제어장치 등도 수준에 오른 기술이다.

문제는 작고 약한 부품업체들이다. 대부분의 한국 부품업체들이 여기에 속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이들 부품업체는 겨우 먹고 살 정도만 수익을 보장받는 처지다. 자동차부품의 영업이익률이 국내 제조업 평균에 못미치고 있음이 이를 증명한다. 원가구조가 뻔한 사업인데 원가절감이 상시화된 시스템에 맞춰 생산활동을 하다 보니 수익을 올리기가 쉽지 않다. 매출이 늘어도 수익은 따라 증가하지 않는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수준에 맞는 품질을 달성하기는 쉽지 않다.

아쉬운 점은 앞서 말했듯이 ‘신뢰관계 구축’이다. 워낙 노사갈등이 극심한 한국이어서 완성차업체의 노사관계, 그들의 신뢰관계 구축에만 초점이 맞춰지지만 사실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게 모기업과 협력업체 사이의 신뢰다. 협력업체는 모기업이 요구하는 수준에 맞추고, 모기업은 협력업체에 기술지원과 필요하다면 자금까지도 밀어줄 수 있는 동반자 관계가 형성돼야 안정적이고 장기적으로 제품 생산활동을 펼칠 수 있다. 완성차업체의 노사문제로 협력업체의 생산라인이 서는 일이 반복돼서는 양자 간에 신뢰가 쌓일 수 없다.

볼트, 너트, 나사 하나로 시작되는 자동차다. 그 기초적인 부품들을 만드는 협력업체의 근로자들이 제대로된 부품을 만들어야 완성차의 품질 수준이 맞춰진다. 그 뿐인가. 정밀한 제어를 필요로하는 전자장비에서는 더더욱 세심한 근로자들의 손길이 필요하다. 협력업체를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하청업체’로 생각하고, 그렇게 대접하는 문화에서는 ‘상생’이 발붙일 곳이 없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자동차시장은 전쟁터다. 죽느냐 사느냐가 결정되는 전쟁터에서 좋은 부품 협력사만큼 든든한 아군도 없다. 또 부품업체 입장에서는 살벌하고 냉정한 시장에서 완성차업체의 후원만큼 힘이 되는 존재도 없다. 그래서 양자의 상생은 생존의 조건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윈윈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혼자서 이길 수 없는 게 지금의 자동차산업 구조이기 때문이다. 독불장군은 없다.


오종훈 기자 ojh@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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